본문 바로가기

문화(culture)/책방

'민족이란 무엇인가'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리뷰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르낭이 1882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했던 내용이다. 그는 1870년에 있었던 프랑스-프로이센(독일) 전쟁을 통해 독일식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건전하고 평화적인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Ernest Renan(1823-1892) 

프랑스의 사상가, 종교사가.

 

사진 revistaenred.com

 

 

르낭은 원래 친독일주의자였다. 전쟁 전, 그에게 게르만족은 타고난 재능과 사고력을 가진 우수한 종족이자 정숙하고 유능하며 괴테와 칸트 같은 인물이 있었던 훌륭한 나라였다. 그런데 프로이센[각주:1]의 비스마르크[각주:2]가 프랑스 영토였던 알자스와 로렌지방이 본래 독일 게르만 민족 땅이기에 프로이센에 병합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다. 이제 르낭에게 전통을 중시하고 도덕적이며 자유를 소중히 여기던 독일은 없어졌다. 그는 무력으로 유럽지역의 평화를 깨뜨리는 독일을 보았다. 르낭은 독일식 민족주의는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다.  

 

 

 

고대는 왕정시절과 종교의 힘이 컸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이 흔치 않았다. 르낭이 살던 시기도 비슷했다. 당시 독일은 38개 작은 주들로 이루어진 독일연방이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연방을 통일시키기를 원했다. 철혈재상이라 불리듯 비스마르크는 강력한 군대로 통일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1871년에 독일 제국이 탄생한다. 게다가 빌헬름 1세가 비스마르크가 점령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르낭은 이런 무력을 통한 독일 통일을 곱게 볼 수 없었으며 프랑스에 수치심을 일으켜 복수심을 낳을 것이라 걱정했다. 독일식으로 평화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반발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할 때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패권을 행사하는 모든 주체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다른 모두의 단결을 가져옴으로써 자신의 파멸을 준비하게 된다. 르낭은 독일 민족주의는 혈통, 언어, 점유한 땅과 같은 유전적이고 인종적인 작은 틀 안에 갇혀있다고 보았다. 르낭은 이것을 프랑스의 평화적 민족국가 원리를 주장함으로써 비판한다.

 

 

 

 

 

사진 catch21.co.uk

 

 

 

종족과 민족을 혼동하고 종족집단이나 언어집단에 실제로 존재하는 민족집단과 비슷한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선 종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독일은 과연 순수한 게르만종족일까. 그렇지 않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이동을 했다. 프랑스 시민은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기도 하며 게르만족이기도 하다. 유럽의 중요한 민족은 본질적으로 혼혈민족이다. 즉 순수한 종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무리한 것에 정치 근거를 두고 논하는 것은 공상에 기초를 두는 것과 같다. 종족은 형성되기도 하고 모습이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종족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중요성이 약화된다.

 

 

언어 역시 특정 종족만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언어에 부여하는 정치적 의미는 언어를 종족 표식으로 간주하는 데 있다. 언어는 단지 역사적인 부산물이다. 언어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면 언어의 한계를 정해 인간을 좁은 곳에 가두는 꼴이 된다. 어떤 언어 안에 몰아넣기 전에, 이런저런 인종의 구성원이 되기 전에 인간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종교는 개인적이고 각자의 양심에 관계되는 것이다. 고대 유럽은 종교가 국가 자체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종교라는 이름에 민족을 가두고 박해를 가했다. 그것은 비합리적이며 건전하지 못하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더불어 중세 그리스도교 세력은 약해지고 더 이상 유일한 신자 대중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각자 자신의 종교를 믿는다. 국가차원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의 신자이면서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될 수 있다.

 

 

이익공동체는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지만 민족을 설명할 수 없다. 이익공동체는 상업상의 조약을 맺는 것일 뿐이다. 관세동맹이 조국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민족은 토지에 의해 결정된 집단이 아니다. 한 민족의 경계가 땅위에 선 긋기로 결정될 수 있고 어떤 이유로 정당화 되어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독단적이고 치명적인 이론이다. 인류는 그런 이유를 통해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행위들을 경험했다. 그것은 끊임없는 전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종족이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듯 영토 역시 민족을 만들지 못한다. 민족은 수많은 과정을 겪은 역사의 분규를 통해 생긴 정신적인 원칙이며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집단이다.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 원리다. 함께 살려는 욕구, 각자 받은 유산을 계속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다. 민족은 노력과 희생 그리고 오랜 헌신으로 일구어낸 과거의 결실이다. 하나의 민족은 공통의 계획을 가지고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 특히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사람들은 단결한다. 그렇기에 민족적 추억이라는 점에서 애도가 승리보다 낫다. 민족의 존재이유는 세상에 하나의 법과 하나의 주인이 있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결국 인간들의 결집과 건전한 정신이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한다.

 

 

 

국가 존재에 있어 민족주의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민족의식은 위기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르낭이 말한 것처럼 민족에 갇혀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민족우월주의를 경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정치인들은 애국을 말한다. 때로 국가는 국민들에게 애국을 원하는데, 애국이란 과연 무엇인가. 애국은 사실 너무 버거운 것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도 벅찬 게 삶이다. 그것도 채우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일상에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먹고 사는 게 힘들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애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인이 좌파니 우파니 떠들어대고 있을 때 현장 실습에 나간 고등학생은 목숨을 잃고, 삶의 버거움에 허우적거리는 시민들은 힘겹게 하루를 버틴다. 그들에게 애국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삶'을 이야기 해야한다. 안정된 밥벌이와 쉴 곳, 건전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가가 된다면 누가 그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애국이란 무엇인가.

 

 

-----------------------------------------------------------------------------------------------------

 

저자 에르네스트 르낭 I 옮긴이 신행선 I <민족이란 무엇인가> I 책세상 I 2002.01.01 I 138페이지

  

 

 

 

  1. 독일 동북부, 발트 해 기슭에 있던 지방. 1701년에 프로이센 왕국이 세워졌으나 제이 차 세계 대전 후 소련 및 폴란드에 점령되었으며 이름도 없어졌다. -네이버 사전 [본문으로]
  2.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독일의 정치가. 프로이센 총리로 ‘철혈정책’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보호관세정책으로 독일의 자본주의 발전을 도왔으나 전제적 제도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통일 후 유럽의 평화 유지에 진력하였으며 여러 동맹과 협상 관계를 체결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