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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culture)/영화관

<옥희의 영화>홍상수 감독_매력적인 그들의 세상

젊은 여자가 아저씨를 싫어할 것이라는 말은 당신의 편견이다.

세상에는 이정재, 차승원 같이 멋진 아저씨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 글은 순전히 개인적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옥희의 영화>를 봤다. 역시 홍상수 감독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나이 든 남자의 '찌질한 세상'을 가장 잘 그려냈다. 내가 듣고 봤던 모든 것이 정말로 그들의 세상이었다.

내가 본 나이 든 남자들은 한없이 비굴하기도, 반대로 호기롭기도 하다. 일관성이 없으니 사람이 찌질해 보인다. 남 선생(이선균)은 '한 달에 술은 두 번만'이라며 화 내는 아내 앞에서는 찍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러다 나이 어린 여제자 앞에서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호통친다. 영화감독인 그는 담당 교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다가도 DSLR을 든 아줌마한테는 "요즘은 뭐 전국민이 사진작가야. 내가 누군지 알아요?"라며 알량한 자존심을 세운다.

그들은 또 '체면 덩어리'다. 어린 여자는 좋아하면서 애 같은 연애는 싫단다. 실은, 속은 시기 많은 어린애면서 겉으로는 어른인 척한다. 그게 너무 빤히 보이니까 찌질한 거다. 송 교수(문성근)는 자기 학생 옥희와 불륜관계다. 옥희에게 치근덕대는 젊은 진구가 못마땅해 진구에 가야 할 작품상을 다른 작품에 줘버린다. 막걸리를 마시며 옥희에게 그 찌질함을 고백한다. 아저씨가 던지는 일종의 경고인 셈. 옥희 네가 잘해야 내가 진구를 제자로 공정하게 대할 수 있다.

반면 젊은 남자는 한결같이 겁이 없다. 잃을 게 없으니 젠체할 것도 없다. 진구(이선균)는 자기 작품이 영화제 수상후보에 오린 것을 대수롭게 생각치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옥희 뿐. 싫다는 데도 줏대있게 들이댄다. 너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난 네가 착해서 좋아"라는 옥희의 말에 자존심도 없이 "착할게"라 답하며 열렬히 구애한다.

옥희는 이 둘을 모두 사랑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옥희의 영화'에서 옥희는 같은 길을 '나이 든 분'과 '젊은 남자'와 함께 걸었던 경험을 나란히 비교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밝힌다. 산 밑 주차장에서 나이 든 분은 혹여나 불륜이 들킬까봐 옥희와 떨어져 걷고, 산 위에서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진구는 눈치도 없이 힘들다는 옥희를 끌고 기어이 정상을 찍었다.

ⓒ 전원사.

진구(젊은 남자)도 결국 시간이 흘러 아저씨가 된다. 그가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는 과정에는 일련의 '선택'들이 있었을 테다. 나이가 듦에 따라 선택의 책임은 점차 커지는 반면 선택할 기회 자체는 줄어든다. 인생은 많은 일의 반복이지만, 항상 어떠한 차이를 낳게 되고, 그 차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저씨(혹은 아줌마)다. 선택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에 그들은 모두 겁쟁이일 수밖에 없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옥희가 말하는 젊은 사람이자, 나이 든 분이다.

젊은 여자들은 옥희에 공감한다. 나이 든 남자와의 만남은 항상 이별의 순간을 염두에 두기에 애틋하다. 젊은 남자는 옥희와 한번 자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고 단정한다. 나이 든 남자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을 음미하고, 상황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대입힌다. 연륜이다. 사랑이 식으면 언제든 떠날 듯한 젊은 남자와는 다르다. 그러기에 겁 많은 옥희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젊은 남자보다 나이 든 남자의 세상에 매력을 느끼는 거다.

결론: 그래서 생각을 좀 해보니 그들의 세상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치만 대머리 아저씨까지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