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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AI,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롤로그

 

 

AI(Artifical Intelligence)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정부와 언론은 AI산업을 강조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딥러닝(Deep Learning)기술로 구글의 AI가 반 고흐의 그림 스타일을 학습한 후 그린 그림이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마치 의식을 가지고 있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시키는 것만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선 단계다. 이 그림뿐만 아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AI가 글짓기도 하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고 다른 분야에서도 화끈한 실력을 뽐내는 AI소식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 재밌고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덜컥 무서운 마음도 든다. 과연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진화하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진 isplus.live.join.com

 

이 그림이 익숙한가? 그렇다 '반 고흐의 그림'이 아니다.

 

 

 

의 여류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그녀가 쓴 최초의 SF소설이라 불리는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얘기해보자. 줄거리는 이렇다. 어려서부터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는 대학에 가서 과학을 접하며 과학이 가진 힘의 매력에 빠진다. 몇 년 뒤, 그는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과학으로 신의 영역에 발을 살짝 들여놓았지만 이내 자신이 만든 것을 보고서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친다. 의지와 상관없이 흉측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가엾은 '괴물',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흉측한 외모때문에 불가능하다. 그에게 외로움은 죽음보다 가혹하다. 결국 자기를 만든 아버지(?)를 찾아가 동반자를 한 명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욕망에 눈이 멀어 뒷 일을 예상치 못했던 빅터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거절한다. 결국 괴물은 빅터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죽이며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과학에만 몰두한 나머지 놓친 것은 '철학'과 '인문학'이다. 철학은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와 같다. 철학이 있었기에 인류와 사회는 적정한 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자, 윤리와 도덕이 없었다면 세상은 전쟁, 살인, 약탈 등과 같은 것들로 가득차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우리에게 적정한 '선'을 그어주고 극도의 야만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1818년이다. 메리는 철학없는 과학에 대한 경고를 약 200년 전에 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에 놀라 감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류의 배는 올바른 곳으로 가고 있는가. 아, 물론 지금은 GPS와 네비게이션이 있어 문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혹시라도 고장 난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복잡한 대로 4거리에 신호등이 고장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것이다.

 

 

 

인간과 기술은 함께 가야한다. 문제는 속도다. 과학의 발걸음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윤리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고 수많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이동할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혹자는 매춘 로봇의 등장을 예고한다. 어떤가, 윤리적, 제도적, 시장의 규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생각만해도 복잡하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시민들은 기술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고 활발하게 토론해 경계하고 준비해야한다. 기술을 주도하는 기업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에필로그

 

 

<프랑켄슈타인>의 부제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The Modern Prometheus)'다. 인간에게 불을 선물해 진보할 수 있게 만들었던 프로메테우스. 하지만 그와 인간은 벌을 받았다. 판도라의 상자. 여인 판도라는 열어서는 안될 상자를 열었고 대가로 인간세상엔 수많은 불행들이 넘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상자엔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가. 인간과 자연을 먼저 생각한다면 충분히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