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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소문의 시대 : 소문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

 

소문의 시대

 

 

 

 

소문[rumour, 所聞] :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사실이나 정보

 

 

 

남편 ‘너’의 이야기.

 

 

너는 대기업 마케팅부서의 과장이며 초등학생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이다. 너는 오늘도 어김없이 안개인지 먼지인지 알 수 없는 회색 새벽 풍경에 몸을 던져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먼저 출근한 C대리가 말을 건다.

 

“과장님 얘기 들으셨어요? 구글에서 만든 알파고라는 인조지능이랑 이세돌 9단이랑 대국을 한대요.”

“이세돌이 누군데? 나는 바둑 잘 모르는데...”

“과장님. 지금 사람들이 세기의 대결이라고 난리예요.”

“그래?”

 

점심시간이 되자 너와 동료들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점심은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소문난 순대국밥이다. 가게 안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직장인들로 만원이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식사 내내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시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너는 바둑에 관심이 없지만 사람들이 자꾸 얘기하니까 관심이 생겼다. 그날 첫 번째 대국은 이세이 졌다. 어떻게 진 것인지 이해는 안됐지만 관심이 생겼다. 식당을 나오는데 순대국밥이 소문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2국이 있던 날, 사무실에선 이세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순간 너는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새삼 느껴져 자신이 이슈에 너무 뒤처져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지만 오늘 이세은 또 졌다. 자꾸 얘기를 듣다보니 재밌게 느껴져 바둑을 배워볼까 살짝 고민해봤다.

 

3국이 지나고 4국까지 왔다. 너는 출장 때문에 바빠서 이세과 알파고의 대국 상황을 알 수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빨리 일을 처리하고 나서 친구 L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뭐가?“

“이세들이랑 알파고!”

“내가 어떻게 알아? 바둑도 안하는 놈이 갑자기 바둑타령이야.”

“지금 사람들이 재밌다고 난리잖아. 그것도 안보고 뭐하냐?”

“사람들이 재밌다고 나도 재밌냐? 나는 관심 없어.”

“어휴, 세상에 뒤쳐진 놈. 됐다. 끊자.”

 

4국은 이세이 이겼다. 대단하다. 너는 어떻게 이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간 승리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졌다. 마지막 5국은 아쉽게도 이세이 졌는데 왜 졌는지는 아직도 잘 몰랐다.

 

며칠 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둑 이야기는 대화에서 사라졌다. 너는 주문하려던 바둑 책을 아직 결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전철을 타고 퇴근하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봤는데 대통령이 AI산업을 강조했다는 기사를 봤다.

 

 

아내 ‘당신’의 이야기.

 

 

프리랜서 워킹맘이며 초등학생 아들을 둔 당신의 최대 관심사는 아들의 교육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내 아이는 꼭 변호사 아니면 의사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오늘은 아들의 초등학교 학부모 중 S여대를 나온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이 있었다. 당신은 모임 장소인 예쁘기로 소문난 강남 L카페로 향했다.

 

“그 얘기 들었어요? 앞으로 AI가 뜬대요. 벌써 정보력 있는 엄마들은 애들을 코딩학원에 보낸대요.”

“저도 들었어요. IT기술이 있는 사람이 경쟁력 있는 세상이 될 거래요. 저도 학원 알아보고 있어요”

“저도요. 심지어 월 50만 원짜리 코딩 과외를 시키는 엄마도 있대요.”

 

당신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라서 놀랐다. 자신이 정보에 뒤쳐진 엄마라고 생각돼 왠지 모르게 자책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간 뒤 인터넷으로 코딩학원을 알아보았다. 벌써 소문이 많이 퍼져서 다른 엄마들이 벌써 앞서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당신은 다른 엄마들에게 얻은 정보로 좋은 학원을 알아내 등록했다. 마음 같아선 월 50만 원짜리 코딩과외를 하고 싶지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학원에 보낼 수 있어 안도감을 느꼈다.

 

늦은 저녁 퇴근한 남편 너가 돌아왔다. 당신은 너에게 아들 코딩학원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남편 너는 코딩이 뭔지 왜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당신은 잘은 모르지만 요즘 정보력 있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코딩이 뜬다는 소문이 있고 우리 아들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너는 당신 얘기를 듣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했다고 말한다. 거실에 있던 아들은 엄마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자기와 관련된 것 같은데 무슨 얘긴지 알 수 없어 읽고 있던 책을 계속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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