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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culture)/책방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리뷰.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1956)>를 읽었다. 4번의 퓰리처상과 193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엄청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익숙치 않은 작가였다. 아마도 이 글을 보는 독자도 그렇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래서 유진 오닐과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인 <밤으로의 긴 여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오닐과 필자의 가상 인터뷰를 희곡으로 써보겠다.

 

 

 

 

1막

 

 

2015년 9월 17일 낮의 중간즈음. 대학로 모퉁이의 작고 한적한 카페.

 

5개의 테이블이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이 흘러나온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쪽, 커플이 마주보고 책을 읽고 있다. 둘은 같은 책을 읽고 있는데 알베르 카뮈<이방인>을 읽고 있다. 에런(필자)은 마주편 끝에 있는 동그란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 테이블 위 유리 주전자엔 빠알간 크림슨펀치가 담겨있고 옆엔 꽃무늬 찻잔이 있다. 등받이에 등을 대고 팔짱을 끼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커플을 보고 있다. 이윽고 카페 문이 열리며 문 위에 달려있던 종이 '땅그랑'하는 소리를 낸다. 클래식한 수트 짧고 깔금한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다가와 앉는다.

 

 

 

 

오닐 : (등받이에 등을 댄 채 팔짱을 끼고 같은 차를 주문한다)당신이 에런이라는 것에 10달러를 걸지.(웃으며 악수하고자 손을 내민다)하하. 반갑네 친구.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들었네.

 

에런 : (활짝 웃으며 악수한다)오닐 선생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실제로 보니 인물이 배우만큼 출중하시네요.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즐거운 대화가 될 것 같아 흥분되네요.

 

오닐 : (의자 팔걸이에 두 팔을 올리며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는다) 내 작품을 읽었다니 나 역시 영광이군.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 이거지. 좋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에런 : (상체를 기울여 손을 마주잡은 채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선생님께선 미국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궁금합니다.

 

오닐 : 아버지라...(차를 한 모금 마시고 수염을 손수건으로 닦는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미국 연극의 주류는 유럽극이었지. 내 아버지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던 배우였고 셰익스피어(유럽극) 전문 배우로 활동했었어. 나는 아버지의 과잉된 연기 양식이 싫었지. 유럽스타일 관습 역시 거부감이 생겼어.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사회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었지. 미국적 맥락에서 절망적인 인간들의 모습들을 표현하고자 했어. 특히 가족 구성원 간 사랑과 미움을 조명했지. 평단으로부터 '비극적 리얼리즘'이라며 찬사를 받기도 했고. 다양한 형식을 통해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다 보니 '아버지'라고 불린 것 같네. 하하. 거참 쑥스럽구만. 근데 기분은 매우 좋군. (찻잔의 둘레를 손으로 더듬으며 창가 주위에 있는 커플을 보며 미소짓는다)

 

 

2막

 

 

창가에 있던 커플은 카페를 나가고 없다. 카페엔 에런과 오닐 '둘'뿐이다.

오닐의 수트 자켓은 옆에 있는 의자에 걸려있다. 에런은 조금 더 편안하게 대화하기 위해 다시 등받이에 등을 대고 있다. 창문엔 커튼이 젖혀져 있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잔잔한 물결처럼 드리운다.

쇼팽의 녹턴 8번이 흘러나오고 있다.

 

 

 

에런 : (강렬한 눈빛을 하며 단호한 표졍을 짓는다. 질문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밤으로의 긴 여로>는 선생님의 가족사를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닐 : (편안했던 얼굴이 점점 굳는다. 잠시 침묵하다 얘기한다) 맞네. 먼저 아버지 제임스 타이런은 나의 아버지를 어머니역 메리는 나의 어머니지. 장남 제이미는 나의 형이야. 차남 애드먼드는 나 자신이고.

 

에런 : (표정이 무겁다)그렇군요. 작품을 읽으며 매우 힘들었습니다. 별장의 거실에서 가족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 받죠. 그리고 그게 계속 반복이 되더라구요. 그런식의 대화가 지속되다보니 낮부터 밤까지의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사적인 가족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게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오닐 : (찻잔에 시선이 머물며 침묵한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대화를 이어간다)나는 이 작품이 사후 25년 뒤에 발표되길 바랐어. 그리고 연극으로 올리지 말라고 부탁도 했었네. 하지만 내 아내가 내가 죽고 3년 뒤 출판사에 보냈지. 이렇게 된 이상 뭐 어쩔수 없지않은가.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는 게 더 마음 편하겠지. (쓴 웃음을 짓는다)

 

 

 

<사진 : urbanmilwaukee.com>

 

 

 

3막

 

 

 

어느덧 창 밖 하늘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카페 주인이 석양 빛을 볼 수 있도록 커튼을 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생기가 돈다.

 

 

 

에런 : (침착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의 내용과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죠?

 

오닐 : (차를 한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 놓는다. 눈을 마주친다.) 책의 맨 앞 부분에 내 메시지를 봤겠지. 내 아내에게 쓴 메시지말이야. 간단히 말해서 내 가족에 대한 슬픔과 이해 그리고 용서로 쓴 글이라네.

 

어머니 메리는 제대로 된 집 없이 배우인 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호텔 방을 돌아다니며 살았지. 집이 없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지 못해. 게다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홀로 두실 때가 많았어. 설상가상으로 메리는 애드먼드를 낳고 몸이 아프게돼. 싸구려 의사와 약으로 치료를 받아. 아버지가 돈을 아끼려다 생긴 일이지. 그러다 결국 약물에 중독된 여인이야.

 

아버지 타이런은 그야말로 보수적인 수전노야. 집에 불을 키는 것도 아까워 하고 투자하는 것도 아까워해.그래서 집이라고 부를만한 집이 딱히 없어. 극중 배경은 별장이지. 메리는 그게 항상 불만이었어. 게다가 아들 애드먼드가 폐결핵으로 아픈 상황에서도 돈을 아끼려고 최대한 싼 요양원으로 보내려하지.

 

형 제이미는 돈에 집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와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를 보고 일찌감치 좌절했어. 그래서 술과 여자로 방탄한 삶을 살아가. 미움의 화살을 아버지와 어머니에의 가슴에 거침없이 쏴버리지. 또한 동생 애드먼드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있어.

 

내 자신인 애드먼드는 이런 부모님과 형의 영향으로 염세주의에 빠진 아들이야. 몸도 아프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큰 병이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술로 달래려하지.

 

 

에런 :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간다)슬픔과 이해 그리고 용서로 쓰셨다고 했는데 극중 가족들이서로 모진 말들을 마구 쏟아 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닐 : (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말한다.)그게 바로 이 작품의 요점이야. 서로 쌓아두었던 응어리를 다 토해내고 싶었어. <밤으로의 긴 여로>작업을 하고 방에서 나올 때면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지. 그 눈물과 함께 미움은 씻겨나가고 이해와 용서가 남게 되는거야. 카타르시스. 감정을 정화시키는거야. 내 나이 52세에 쓴 글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걸세.(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젊은 시절 나는 원망만 하던 아이였었지.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어. 시간의 힘이라는 게 참 대단하지.

 

 

4막

 

 

어느덧 해는 지고 창문엔 어둠이 가득 찼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밝다.

카페 안은 여전히 쇼팽의 녹턴(야상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막 밤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듯이.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에 작은 촛불 하나가 놓여있다.

 

 

 

 

에런 : 얘기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네요. 작품에서 인물들 각자 불만을 토로하지만 결국 나중엔 본심이 그렇지 않다는걸 얘기하죠. 그 이야기들은 선생님이 가족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마도 많은 가족이 겉으로 보기엔 행복해 보이지만 저마다 슬픔과 불만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다면 좋겠죠. 좋은 작품과 함께 대화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 숙여 인사한다)

 

 

오닐 : (활짝 웃는다)내 작품을 읽고 고민하고 의미를 부여해줘서 고맙네. 그게 작가에겐 가장 큰 보람이지. 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고맙네 친구. 어이쿠 벌써 밤이 되었구만.

 

 

 

 

카페 안으로 안개가 차기 시작한다. 잠시 뒤 오닐은 사라지고 없다. 에런은 혼자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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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유진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