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culture)/책방

'역사란 무엇인가' (1961) E.H Carr

 

 

 

 

 

 

<역사란 무엇인가>(1961)  Edward Hallet Carr

 

 

 

프롤로그

 

 

 <백년동안의 고독>은 G.G 마르케스의 경험과 실제 있었던 역사 사건에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스타일을 가미해 쓰 작품이다. 여기엔 '역사'에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소설에서 정부군이 광장에서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다. 마르케스는 정확히 그 사건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3000명이 죽었다고 다소 과장되게 표현했다.

 

책이 나온 뒤, 의회나 언론에서 사람들이 그 사건을 이야기 할 때 3000명이 죽었다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마르케스는 역사라는 게 어쩌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Edward Hallet Carr(1892-1982) 

사진 haikudec.com

 

 

 

E.H 카<역사란 무엇인가>. 필자의 목적은 요약, 정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려 한다. 짧게나마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를 전달하고 싶다. 이 포스팅을 읽고 책에 관심을 가져 준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카가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 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에서 카는 기존의 역사학이었던 실증사학을 비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철학을 이야기 한다.

 

 

 

 

 

1장 '역사가와 사실'

 

 

 

 

단지 사실을 나열한 역사는 진정한 역사가 아니다. 19세기는 '사실'을 매우 존중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역사는 확인된 사실의 집성으로 이루어졌다. 사실과 역사적 자료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말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실이나 문서가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에 생명을 주는 것은 역사가다. 역사가가 선택하고 입김을 불어 넣은 사실만이 역사가 된다. 카는 사실이란 게 결코 생선가게 좌판 위에 올려놓은 생선같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사실이란 때때로 근접할 수 없는 넓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역사상 사실이라는 것은 완전히 순수하게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언제나 역사가를 거쳐 굴절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즉 역사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과 심적 접촉을 하지 못하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를 쓸 수 없다.

 

 

카는 1장을 마무리 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초의 답을 한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주제의 관계와 같다. 역사가는 사실의 노예가 아니고 군림하는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은 평등한 관계여야만 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사진 교보문고

 

 

 

 

 

2장 '사회와 개인'

 

 

 

 

헤겔은 말했다. 어떤 시대의 위인은 그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그 의지를 시대에 알려 그것을 실행한 사람이다. 위인의 행위는 그 시대의 핵심이자 본질이며 그가 그의 시대를 실현한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적 산물이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 개인으로서 인간 행동에 관한 연구는 그들 행위의 의식적 '동기'를 연구해야 한다.  한 인물에 의해 고취된 관심만큼 인간의 역사관에 오류와 불공평을 야기하는 거은 없다.

 

 

역사 속 위인을 역사 밖에 두는 것을 옳지 않다. 위인은 초인이라기보다 역사적인 산물이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은 당시 사회적 여러 힘의 대표자, 창조자인 뛰어난 개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고 개인은 사회적 존재로서 역사 안에서 함께 참여한다.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가와 자연과학자의 목적과 방법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과학자가 만드는 일반적 명제는 더욱 진보한 사고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가설이며 그것은 언제나 증명과 반박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더라도 그것은 어떤 포괄적인 법칙을 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연구에 대한 길을 개척하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주의자 조르주 소렐은 "우리는 자신의 방법을 의식하면서 전진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연적이고 부분적 가설을 엄밀히 검토해 언제나 고쳐야 할 여지가 남은 잠정적인 '근사치'정도로 만족해야한다"고 말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확고한 법칙을 만드려 했다. 과학자들에게 세상의 법칙과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하지만 인간이 확고한 세계의 이치를 발견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뉴턴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대체되었다. 그렇다고 뉴턴의 이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뉴턴 자신도 이전에 있던 수많은 거인들이 내준 어깨위에 자신이 올라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턴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자들의 업적이 있었기에 아인슈타인도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과학으로서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가가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수집가와 구별되는 것은 그 역사적 사실에서 일반화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데 있다. 여기서 일반화 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행동을 위해 타당하고 유효한 것이어야만 한다.

 

 

역사와 도덕의 관계는 어떨까. 역사가는 재판관이 되면 안된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다. 역사적 사건을에서 한 개인의 도덕성만을 원인으로 본다면 더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면 역사가는 제도를 만든 개인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가장 유익한 문제는 과거의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 제도, 정책 등과 같은 그 배경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더 의미가 있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는 '원인'에 대한 연구다. 역사가는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문맥에 대해 ''라고 묻는 사람이다. 역사학자가 다루는 원인들은 복잡하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원인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은 역사가의 진짜 의무가 아니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원인들의 상호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으로 질서를 만들어 어떤 것이 궁극적인 원인인지, 원인들의 원인은 무엇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역사에서 우연적 요소와 가정은 어떨까. 역사가는 우연적인 요소보다 필연적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 1차대전에 참전했던 히틀러가 전사했더라면 유대인 학살과 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우연적인 것을 생각해봤자 남는건 상상하는 재미밖에 없다. 그보다는 어떻게 히틀러가 민주주의적 절차로 총통이 되었고 왜 유태인을 그렇게 학살했으며 어떤 이유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필연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게 유의미하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 있는 환경과 시대적 배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가 될 수 없으며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진 것들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

 

 

 

 

역사는 언제나 변화하며 진보한다. 진보가 가능한 것은 과거의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얻은 경험덕분이다. 역사는 그 경험들을 통합함으로써 진화, 진보했다. 정적인 세계에서 역사란 무의미하다. 역사는 본질상 변화며, 운동이고, 진보다.

 

 

역사 진보의 원동력은 현재에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의 미래가 된다. 원동력은 초역사적인 힘도 아니고 역사 밖에 있지 않다.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을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콩을 심으면 미래에 콩이 난다. 팥이 나지 않는다.

 

 

카는 미래로 진보하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회는 과거에 스스로 이룩했던 진보에 대한 관심도 상실할 것이라고 말한다.

 

 

 

 

6장 '넓어지는 지평선'

 

 

 

 

산업혁명이 낳은 가장 의미있는 결과들 중 하나는 자기 '이성'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과학의 발전과 발견이 거듭되고 그것들이 응용되면서 사회는 진화했다. 인간의 의식적 노력은 역사를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 진보는 한 차원에서는 기존 제도의 단편적 개량을 구했고, 다른 차원에서는 이성의 이름으로 당시의 제도에 도전함으로써 이룩되었다.  

 

 

역사는 이런 변화들을 통해 보다 깊어지고 넓어지는 지평선과 같이 지속적으로 운동한다. 역사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해서 언제나 충분한 감각을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과정은 힘들고 역사가는 번민힌다.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는 분명히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믿고 낙관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에필로그

 

 

<역사란 무엇인가>는 단순히 역사가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만 관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삶은 수많은 일과 함께 흘러간다. 미디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미디어가 발달했지만 아직까지도 언론이 그 중심에 있다. 그들은 역사를 기록한다. '사실'이라고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들과 그것을 읽고 보고 듣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아 하는가.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태도와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1930년대에 버트런드 러셀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에 어긋나는 신문은 보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각자의 편견을 확증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약 9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대상을 바라볼 때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 조금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한 주체가 보여주는 사건의 프레임을 경계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한 손에 꽃을 든 사진을 보여줬을 때 나는 다른 한 손을 보고싶다. 다른 손에 선물이 있을지, 총을 쥐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당신이 과거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당신은 미래를 더욱 잘 준비할 수 있다.

 

-시오도르 루즈벨트

 

 

 

-----------------------------------------------------------------------------------------------------

 

참고자료

 

저자 E.H. 카 I 역자 권오석 I <역사란 무엇인가> I 홍신문화사 I 2006.05.30I 211페이지